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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현 특별기고] 묘사(墓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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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교수 윤승현 작성일21-02-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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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남대학교 교수 윤승현내가 어릴 때 고향마을에는 겨울 즈음에 산으로 묘사(墓祀)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들판에서 놀다가 멀리에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일행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들이 묘사를 지내러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들은 객지에서 살다가 부모님이나 조상의 묘(墓)에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이었다. 연장자들은 걸어서 가고 젊은 청년은 지게에 제사 음식을 가득 지고 분주하게 걸어가곤 했었다.
   들판에서 뛰어 놀던 우리는 그 일행을 따라 산으로 같이 따라 가는 경우도 있었다. 여자 애들은 가지 않았고 남자 애들만 따라 갔었다. 제사에는 남자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자연스런 고향마을의 교육 때문이었다. 나는 내 남동생이 하나 밖에 없었지만 어떤 친구는 동생이 서너 명인 경우도 있어서 묘사를 지내러 가는 일행들보다 뒤따라가는 동네 애들이 많은 경우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험준한 산속으로 힘들게 걸어서 가기도 했었다. 따라가는 아이들은 누런 콧물을 달고 자빠지기도 하고 어린 동생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열심히 따라갔다. 그 당시 시골에는 애들은 많고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제대로 의복을 갖춘 애들은 드물었다. 찬바람이 불면 그대로 몸속으로 냉기가 전달되어 애들이 벌벌 떨면서 따라가곤 했었다.
   어린 우리가 열심히 묘사 일행을 따라 갔던 이유는 묘사가 끝나면 제사 음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믿음은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묘사가 진행되는 동안 묘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소나무 밑의 죽은 잔디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다.
   묘사가 끝나면 제일 연장자인 할아버지가 일행들에게 제사 음식을 참여한 모든 동네 아이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주도록 하였다. 분배과정은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먼저 한지(韓紙)를 모든 애들 앞에 한 장씩 깔게 하고 음식을 호명할 때마다 아랫사람들이 공평하게 잘라서 한지 위에 나눠주었다.
     나이가 어린 애라고 작은 것을 주고 좀 나이가 든 애라고 큰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참여한 애들에게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빠짐없이 골고루  배분하도록 엄한 목소리로 호령하셨다.    어린 나는 그 배분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할아버지의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인간 존중의 자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러한 묘사(墓祀)에 참여한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할아버지의 정신과 마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 나는 초중고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그렇게 훌륭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사람을 대하는 그 자세는 평생 동안 나에게 가르침이 되었다.
   묘사가 끝나면 묘사 일행은 지게를 지고 우리는 받은 한지로 싼 음식봉지를 들고 하산하였다. 시골에서 묘사 음식은 어머니들을 기쁘게 하였다. 그 음식으로 몇 끼를 찬치 집 분위기로 온가족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여러 명이 따라 갔던 집에서는 며칠 동안 별미를 먹었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사회가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인간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존경이나 배려하는 마음도 부족하고 사람을 이해관계에 따라 대(對)하는 타락하여 가는 사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가 어릴 적 묘사에서 나에게 교훈을 주었던 그 할아버지는 어린아이 한명 한명의 몸속에 들어있는 인격과 영혼을 귀하게 생각하고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묘사 음식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엄격하고 철저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 할아버지의 따뜻했던 마음과 정신이 그리운 날이다.
한남대학교 교수 윤승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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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